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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글에서 커피값 500원을 아끼려는
두 직장 상사의 기 싸움 일화를 소개했었는데요.
오늘은 자진 퇴사를 권고사직으로 만들어버리는 또 다른 두 명의 직장 상사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저는 최근 3년간 7번의 이직을 했는데요.
지금 얘기하려는 회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회사입니다.
대표님들과의 면접 당시 들었던 이야기로는 전임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지만, 그들이 자진 퇴사를 결정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구인 공고를 게재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구인구직이라는 게임에서 기왕이면 같은 종업원이 오래 버텨주는 것이 회사에 득이 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위로의 말씀을 올리고 저도 열심히 해보겠노라 마음의 안정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건 입사를 하고 퇴사도 했다는 거잖아요?
퇴사한다던 전임자들의 퇴사 코스프레에 조연으로 참여한 줄도 모르고 엮인 나머지 연거푸 두 번 연속으로 전혀 다른 전임자들에게 똑같은 상황을 선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직장을 다녀본 건 아니지만 본인 입으로 퇴사하겠다고 해서 후임자를 채용했는데 은근슬쩍 인수인계를 미루고 심지어 화를 내면서 다시금 퇴사하지 않겠다는 비상식적인 의사결정에 할 말을 잃었는데요.
이 일을 겪고 주변 직장인들을 만날 때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아무리 선 체험자를 찾아봐도 다들 놀라기에 바빴을 뿐 저만이 유일한 당사자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황당무계한 일은 있으면 안 되겠죠.
이 비극의 서막은 전 직장을 퇴사하고 9개월의 정비 기간을 거친 후 새로이 입사한 첫 회사에서 올려졌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9년 6개월을 한 회사에 재직했었는데요.
퇴사 몇 개월 전 대표님의 뜬구름 잡는 투자가 휴지로 확정되면서 그 불똥이 직원들을 데이게 하는 바람에 모두 해고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병 때문에 7년 전에(2024년 기준) 수술하기도 했고 체격은 있지만, 체력이 없어서 평소에도 비실비실했는데요.
대표님이 쏘아대는 불똥 때문에 다시금 건강이 악화하면서 해고와 퇴사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9개월의 시간 동안 무직자로서 즐거운 실업 생활을 통해 심기일전 된 마음으로 이직에 성공한 줄 알았는데요.
퇴사를 하기로 한 전임자께서 인수인계할 생각을 안 하셨습니다.
이분은 직급이 부장이었는데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 이 부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아~ 첫날이니까 회사 분위기를 익히라고 부장님께서 여유를 챙겨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나도 딴청만 피우시고 인수인계를 안 해주시는 거예요.
다들 바쁜데 가만히 있기가 뭐해서 서류 정리도 하고~ 제가 앉을 아무것도 없는 책상 정리도 하면서 또 퇴근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 부장님은 인수인계만 안 해주실 뿐 친절하고 말도 잘 걸어주셨는데요.
10년 이상 이 회사에 근무하시면서 과중한 업무로 인한 만성 피로 때문에 몇 번의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적당한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서 힘들게 다니고 계신다고 토로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더 이상 일하기가 너무 싫어서 백수로 살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죠.
지금 회상해 보면 강한 부정은 또 다른 긍정인데 그때는 모든 근로자의 희망을 대변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건강이 안 좋아져서 전 직장을 퇴사했기 때문에 10살 가까이 많은 선배님이시라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담당하셨던 업무의 인수인계를 제외한 회사 또는 제가 꼭 알았으면 싶은 회사 뒷얘기를 다양하게 해주셨습니다.
부장님의 자택과 회사와의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가까이 걸렸는데요.
아직 퇴사 날짜를 정하지 않았고 퇴사하더라도 바쁜 프로젝트가 있으면 아르바이트로 출근할 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없는데 불러 달라는 건지 물어본 적도 없는 제게 기억하라고 통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에 ‘아우~ 댁이 머신데 뭐 하러 여기까지 오세요~.
쉬시다가 댁 근처에서 아르바이트하시면 되죠~.’라고 진심으로 이 회사가 뭐라고 건강이 악화한 부장님이 교통체증에 시달릴까 말씀드렸습니다.
또 어느 날은 특정 거래처를 지칭하면서 이 업체는 너무너무너무 잘되고 있는 곳이라 대응해야 하는 업무 또한 넘치게 많은 고객사라며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으름장을 놓으셨습니다.
입으로만 인수인계받아서 그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인지 유령회사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9개월이나 근로 생활에서 벗어나 충전이 되어서인지 체력 배터리가 충분한 관계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고객이 잘되면 좋죠~.
그러면 저희도 일이 많아지고 매출이 늘어나니까 잘 안 풀리는 것보다 일이 많은 게 더 좋은 거잖아요?’ 라고 부장님이 원하지 않는 답변을 또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훌륭한 인성의 종업원이라서가 아니라 회사가 돈을 벌어야 그 안에서 월급을 받는 거니까 당연한 답변이었죠.
하루에 적게는 한 개 많게는 두세 개 후임자가 꺼릴 만한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상냥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베풀어주셨는데요.
또 다른 일화로는 본인은 프로젝트 마감 기일이 가까워지면 몰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성향이라 그때그때 일하지 않는 관계로 ‘내가 떠나면 너에게 남겨진 일이 많을 것’이라고 또다시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한 번의 으름장으로는 성에 안 차셨던 거죠.
웃으면서 본인의 무능함을 나긋나긋 발설하는 것도 인생의 노련미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입사한 제가 눈치가 없었던 건데 당시에는 인수인계에 더 집착해서 어떻게든 빨리 업무 전달을 받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부장님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전임자가 남기고 간 일거리들은 못해도 잘해도 모두 저의 책임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부장님은 안 되겠는지 다음날 더 강력한 카드를 꺼내셨는데요.
일이 많다는 데도 제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니까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는 뭔지 몰랐던 언짢음이 생기셨던 것 같습니다.
이 회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요.
대표이사의 딸이 근무하는 가족회사라는 점이었습니다.
딸이 자리를 비웠을 때 살며시 저에게 사실은... 이라면서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말하는 본인이 더 놀란 표정을 지으시더라고요.
근무 첫날 이곳에 대표이사의 딸이 근무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 큰 치부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곳은 중소기업이라 면접을 대표님과 직접 치렀는데요.
대표님의 말씀을 듣는 와중에 딸이 함께 근무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입사일에 직원들이 통성명하는데 대표님과 같은 성을 가진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내 직감이 맞았구나!’ 딸이 아니라면 친척이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잠시 후회했습니다.
친인척이나 가족회사에 다녀보신 분들은 아실 것 같은데요.
저도 이모와 조카가 함께 있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고 이해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부당한 일을 겪는 직장동료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 선입견이라는 건 한 번 물리면 잘 낫지를 않아서 속으로 ‘내가 여길 왜 왔을까?’ 싶었는데요.
그런데 이곳 대표님과 따님은 드라마에서 종종 보이는 가족회사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은 외부 방문자들의 차 심부름이나 간단한 복사 같은 허드렛일을 꼭 딸에게만 지시하는 분이셨고 제가 복사라도 해서 가져다드리는 날에는 굉장히 멋쩍은 표정으로 이런 소소한 일을 해 온 저에게 미안함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대표님은 굉장히 훌륭한 어른이셨고 따님도 허세나 갑질보다 겸손이 앞서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을 낳을 생각이 있다면 배우자의 인성을 정말 잘 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앞선 이런 경험 후에 부장님 혼자만의 폭탄 발언을 들었기 때문에 감정의 요동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업무에 적응하기도 빠듯한 시간을 이런 소모적인 이야기와 문구점 방문 등으로 허.송.세.월.하면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낭비되었는데요.
일주일 동안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부장님의 퇴사 코스프레를 눈치채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이 아니라 첫날부터 느껴지긴 했지만, 그때는 저의 과민반응을 스스로 나무라며 세상에 ‘퇴사하고 싶지만 퇴사하기 싫은 사람’이 존재할까 싶어 갸우뚱거렸는데요.
귀한 시간을 내어서 글을 읽어 주시는 분 중에 한 번이라도 퇴사를 해보신 분이 계신다면 회사의 단점이라고 생각될만한 것들을 후임자에게 어떻게든 가리려고 노력하는 게 맞잖아요?
후임자를 붙잡아야 내가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 부장님은 미리 알아두면 나쁠 게 없다는 식이었지만, 제가 다음날부터 출근을 안 하길 내심 바라는 사람처럼 멀쩡한 일화를 흉으로 둔갑시키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니 프로젝트 마감 기일에나 닥쳐서 야근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거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주 5일을 겪은 후 주말 동안 비방이라는 꾀를 구상해 봤습니다.
다음 월요일에 출근해서는 대표님이 들으실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인수인계는 언제 해주시는 건가요?”
“부장님 퇴사하는 거 맞으세요?”
“저 이 회사에 다니는 거 맞나요?”라면서 부장님이 말할 틈을 안 주고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물론 이 부장님께 받은 대로 돌려드려야 했기에 웃으면서 할 말 하는 후배 역을 맡았었죠.
부장님은 수더분한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이었는데 묘한 미소를 띄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쭤본 질문에는 대답을 피하시고 대표님의 딸이 외근을 나간 틈을 이용해서 또다시 비밀을 공개하셨습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네가 이건 못 참을 거다 싶은 표정으로 “대표님 딸은 급여가 우리보다 훨씬 많아요~.
원래 급여는 비공개인데 난 알고 있어~. 사인전씨~ 뭐 그런 거 괜찮죠?”라고 물으셨습니다.
질문을 듣고 그동안 부장님의 후임이 왜 안 구해졌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면접 당시 당신도 사람을 많이 봐와서 보는 눈이 있는데 적당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본인의 높은 눈을 자책하셨는데요.
건강이 안 좋은 이 부장님을 계속 붙잡고 있으려니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제 이력서에 있는 전 직장 9년 6개월이라는 문구와 대표님의 성향과 일치하는 몇 가지 내용을 보시고 실제보다 좋게 봐주셔서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회사를 겪어보니 후임 채용이 안 됐었다기보다 부장님이 이런 식으로 신규입사자들의 근무를 막음으로써 회사로서는 부장님께 계속 매달리고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보였는데요.
그래야 바쁜 프로젝트마다 본인의 몸값을 띄워서 대표자의 자녀와 비슷한 급여를 쟁취하고 그로부터 열패감을 풀 수 있기 때문이죠.
부장님은 따님보다 동종업계에서 출근 일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툭하면 상대방의 업무력을 깎아내리면서 본인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는데요.
딸의 급여가 우리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를 한 것도 “너도 알면 나처럼 화날 게 분명하니 같이 편 좀 먹어줄래? 일하는 것보다 더 받고 싶다~.” 포효로 밖에 안 보였습니다.
그간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연봉 때문에 분쟁으로 시비가 엇갈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는데요.
평소 생각은 제가 일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받는 것보다 좀 더 일하고 일하는 것보다 조금 덜 받는 게 회사와 제가 상생하는 길이라는 소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장님께는 ‘네에~ 대표님께서는 딸이니까 더 많이 주고 싶으시겠죠~. 부모 마음은 다 그럴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 받는지 관심 없습니다~. 제 계약서만 지켜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돈 욕심이 없는 유유자적 인간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 인생을 살아내기도 벅차서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는 관심을 둘 시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본인이 얘기를 하겠다면 들어주지만 굳이 나서서 어제 뭐 했는지 집안 사정은 어떠한지 그래서 네가 얼마를 버는지 일로 만난 사이에서 선을 넘는 실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묻지도 않고 저에게 물어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 성향인데요.
부장님은 이날 이후로 얘는 안 통하는 애라는 걸 깨달으셨는지 태세를 전환하셨습니다.
인수인계는 열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안 해주셔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사무실 정리 정돈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부장님은 참 성실하신 분이라 제가 일찍 출근해서 청소하는 게 미안했는지 저보다 본인이 더 일찍 출근하셔서 미리 청소를 해놓으셨습니다.
내일모레 퇴사하겠다는 분이 후임자의 뒷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본인이 더 열심히 하는 모습에 대체 인수인계는 왜 안 하면서 청소에 집착하는 건지 음흉한 꼬리가 슬슬 싫증 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큰일이다” (못 다녔으면 좋겠다) “일할 수 있겠냐” (안 다니는 게 낫지 않니?) 등의 저와 회사가 근심할 일에 본인이 더 훈수를 두셨습니다.
이분은 미혼인데 취미도 애인도 없고 입으로는 백수로 살고 싶다고 하시지만, 현실은 돈 쓰는 게 아까워서 일을 안 하면 할 게 없는 거죠.
입사하고 2주가 가까운 시점에 점심 식사 후 부장님과 둘만 사무실에 들어온 날이 있었는데요.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밑도 끝도 없이 대표님은 돈이 많은 분이고 추가 수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며 “월급 걱정은 안 해도 돼.” 하시는 거예요.
순간적인 직감으로 퇴사를 안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미리 이런 말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남이 가진 재산에는 관심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대표님이 돈이 많네~ 적네~ 예고도 없이 타인의 재력 운운하는 것이 본인이 받았던 급여의 소득자가 퇴사와 동시에 저로 변경되어야 하는데 퇴사를 안 할 경우 전임자와 후임자의 급여가 동시에 지출되는 거니까 회사에서는 당연히 손해인 거겠죠.
이런 말도 안 되는 꿍꿍이를 혼자 상상하면서 대표님은 돈 많은 사람이니까 괜찮다는 황당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이 부장님의 잔머리로 몸값 높이는 퇴사 코프스레를 확신하며 제 믿음에 대한 최종 확인을 위해 부모님께 그간의 일을 여쭤보았습니다.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는 인생이 간헐적으로 느껴질 때 부모님께 여쭤보곤 하는데요.
훨씬 연륜이 많으시니까 대략적인 설명만 해도 명확한 답변을 주시곤해서 혼자 결정하기 부족한 일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하곤 합니다.
이야기를 들으시고 엄마께서는 “전임자 퇴사 안 할 것 같은데?”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날 밤 잠을 못 자고 이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와 다니지 말아야 할 이유,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보았습니다.
부장님은 10년 넘게 이 회사에 다니셔서 미루다 미루다 막바지에 업무를 처리하는 처세술에 능했고 당시 쉰 살 정도의 나이라서 앞으로도 10년 이상 충분히 근무하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퇴사한들 챙겨야 할 자녀도 배우자도 취미마저도 없기 때문에 다시 일을 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다니던 곳 다니는 게 고객사들이 새로운 담당자를 적응하는 것보다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린 제가 직장을 구하러 나가는 게 낫겠죠.
근무한 지 2주밖에 안 돼서 면접 중 입사 체험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이 피곤한 연극에서 빠져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표님은 항상 1시간 전에 출근하셔서 신문을 보시고 하루를 시작하셨는데요.
2시간 일찍 나가서 제 짐과 자리를 정리하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대표님께서는 혹시 급여가 적어서 그런 거냐면서 원한다면 급여를 더 주겠다고 하셨는데요.
근무한 지 2주밖에 안 됐고 이미 계약서에 도장도 찍었는데 이런 대표님의 선함이 ‘곰인 척하는 여우’를 키웠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드릴 건 없고 대표님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의문의 문장만을 남기고 자리를 나섰습니다.
대표님의 걱정거리라는 건 부장님이 계속 근무하면 좋겠지만 건강 악화로 퇴사하겠다는 사람을 붙잡기가 어렵겠다는 마음과 부장님의 퇴사를 가로막는 적당한 후임자가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지금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이 부장님의 속내는 퇴사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결론적으로 대표님의 걱정은 직원에 대한 신뢰와 본연의 성정에서 비롯된 혼자만의 아픔인 것이었죠.
짐을 들고 건물 1층으로 내려오면서 부장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후임자가 인수인계를 받던 도중 면접관도 아닌 전임자에게 근무를 안 할 거라는 연락을 하는 일은 없겠죠.
저는 어릴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왜 이런 표정을 짓는지 그 의중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하고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요.
부장님의 반응이 궁금해서 ‘죄송하지만 안 다닙니다.’ 라는 의미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장이 왔는데요.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행여나 다시 출근한다고 본인처럼 굴까 바였는지 “어쩔 수 없죠.”라는 짧은 한마디를 보내왔습니다.
문장 뒤에는
괄호하고 "다행이다" 또는 "넌 다른 애들과 달리 너무 시간을 끌었어! 얘" 라는 안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9개월을 쉬고 입사한 회사에서 2주 동안 인수인계를 질질 끌다가 결국 퇴사하지 않겠다는 동종업계 선배를 보며 내가 한 말에 스스로 책임지는 게 어른이라는 안 배워도 알 것 같은 이론을 다짐 후 다시 면접 길에 올랐습니다.
* 실패를 다시 이루고자 어떤 고난도 이겨낸다.
새롭게 이직한 첫 회사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겪긴 했지만, 세상의 중심은 제가 아니고 우주라는 걸 알 나이이기에 액땜이라 생각하고 이번에는 확실히 퇴사할 전임자가 있는 곳으로 입사하겠노라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2주 뒤에 우연히 한 회사의 면접관님을 뵈었는데요.
이분은 직급이 이사님이시라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서 김 이사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김 이사님은 2주 전에 뵈었던 대표님과 비슷한 품위를 가진 분이셔서 '아~ 번지수가 여기였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사업장의 주소지 또한 2주 전 회사와 행정동은 반대 방향이었지만 동일한 자치구 소속이어서 10분 안에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는데요.
2주 전에 일어난 에피소드는 그저 주소를 잘못 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넘겼습니다.
이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직원 채용 분야에서 현재 가장 힘든 점은 어떤 부장이라고 하셨는데요.
원래 이 회사는 대표자 4명의 동업 형태로 스무 명가량의 직원이 있었는데
어떤 부장이라는 사람이 2년 전에 입사한 후로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편을 가르는 바람에 이직률이 높아지고 회사 경영에도 차질이 생겨서 급기야 동업을 안 하기로 하고 같은 건물에 같은 층을 임차 중이지만 이제 각각의 개별 회사가 되었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규입사자에게 바라는 건 직원들과의 평범한 관계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표자들의 동업이 종료되면서 그 괴팍한 성격의 부장은 옆 회사 소속이 되었기 때문에 마주침에 대해서는 일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행여나 오해할까 먼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언니, 동생, 친구 이런 인간관계는 항상 뒤끝이 안 좋아지는 광경을 많이 봐왔는데요.
이사님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저를 채용하신다면 최소한 그 부장이라는 직원처럼은 행동하지 않겠다는 걸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마음의 평화를 건네드렸습니다.
면접 종료 후 본인은 이 회사의 이사이고 대표자는 따로 계셔서 너는 거의 채용이지만 그래도 상부에 보고해야 하니 하루 정도 기다려 달라고 말씀하시면서 현재 공석인 자리라 출근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물으셨습니다.
저는 김 이사님이 저의 직장 상사가 되길 바라면서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했는데요.
다만, 내일은 기존에 약속되어 있는 면접이 있어서 모레부터 출근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 제 진심은 내일 면접 볼 회사와 이곳을 비교할 생각은 없었지만, 과거에 면접관으로 참여를 해본 결과 연락 두절로 면접일을 어겨버리는 구직자들을 종종 본 적이 있어서 죄송하지만 내일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는데요.
이 양해가 훗날 부메랑이 되어 저의 멀쩡했던 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사님께서는 그럼 내일 면접 잘 보고 모레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즐겁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고 다음 날 약속된 다른 회사의 면접을 봤습니다.
다음날 찾아간 회사 면접관께서는 과거 지병으로 수술한 기록이 있다고 하자 앞으로도 쭉 쉬라면서 5분 만에 면접 거부권을 행사하셨습니다.
저는 20대 후반부터 지병으로 점차 건강이 안 좋아졌었는데요.
그 당시 감히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성에게 “넌 왜 항상 아파?”라는 말과 함께 차인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 어떤 거부권이 저에게 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별로 궁금하진 않으시겠지만, 현재 저의 건강 상태는 몇 해 전 명의를 만나 수술을 한 뒤로 건장해진 상태입니다.
다시 면접 이야기로 돌아와서 또 다음날이 되어 '김 이사님이 연락을 주시겠지'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요.
저녁 6시가 다 되어가는데 합격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시 구직 사이트를 열려고 하자 의문의 한 남성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날은 금요일이었는데요.
이 남성분께서 말씀하시길 그저께 면접 본 회사의 대표자라면서 월요일 9시에 차 한잔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는 겁니다.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종료하였습니다.
예전에도 작은 기업이지만 면접을 2, 3차까지 본적이 있어서 2차 면접인가보다 하고는 월요일에 대표님을 만나 뵈러 갔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대표님은 2주 전의 대표님과 구분을 위해 조 대표님으로 설정하겠습니다.
전화 목소리가 젊었는데 실제로 만나 뵈니 저보다 어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하시는데 지난 수요일에 김 이사님과 나눈 얘기를 똑같이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만 '서로 대화를 안 하시나?'하고는 또 똑같은 답변을 이어 나가고 있는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저 쪽 사무실은 창이 없는데 이쪽 사무실은 통창이라 환하다는 둥, 저 쪽 사무실은 네 위에 상사가 있지만 이쪽 사무실은 네가 상사라 부하 직원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멍해져서 '제가 입사를 하게 되면 창문이 멀리 있는 저 쪽 회사 구석에서 일 하는 게 아니라 이 밝고 화사하고 통창으로 햇볕이 잔잔하게 들어오는 넓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가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저 쪽에서 일하는 줄 알고 오늘 면접 보러 온 건데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면접 당시 김 이사님의 인품을 겪고 여러 번 만나기 힘든 직장 상사라는 걸 한 눈에 알아봤기 때문에 통창 따위랑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조 대표님께서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응 넌 여기서 일해야 돼"라고 하시면서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 이 건물에서 있었던 일화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조 대표님이 계시는 이쪽 회사의 그 몰상식한 부장님이 사흘에 한 번씩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대표님이 저쪽 회사의 김 이사님과 목요일 저녁에 술 한잔하면서 하소연을 하셨던 겁니다.
이사님께서는 "2년 동안 많이 참았으니 이제 진짜 그 부장을 퇴사시키고 내가 채용하려고 면접 본 1차 검증자가 어떨지 대표님이 면접을 보세요" 했던 겁니다.
일종의 구직자 돌려막기 라고 해야할까요?
실제 이 두 분은 삼촌뻘 되는 나이 차였지만 드라마에서 종종 보는 감초 조력자 역할을 이사님이 해내고 계셨기 때문에 보통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일도 저를 제물 삼아 주인공을 위기에서 도와주는 가이드 역에 충실히 임하고 계셨던 거죠.
지난 금요일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면접에 응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쪽 회사의 대표님께서도 그냥 차 한잔 마시자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 동네에서도 쉽지 않았는데 이 동네는 또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회사에서 일하나 저 회사에서 일하나 어차피 그 일이 그 일이고 이사님께서 목요일에 연락하겠다고 하셨을 때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필요한 언행으로 금요일에 연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제 운명이 밝고 화사한 통창이 있는 자리에서 근무할 팔자인가보다 라고 애써 인연 만들기를 하면서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 대표님께서 정말 그 부장이라는 분 때문에 힘드셨나 봐요.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그 큰 눈에 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제발 꼭 입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대표라는 직책이 이러시기 쉽지 않죠.
제가 스스로 찾아서 지원하지 않은 회사는 입사하지 말자는 철칙이 있는데요.
입사라는 건 회사의 종업원이 되는 일이지만 월급을 받는 만큼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회사의 이익을 위하는 곳이기 때문에 구직자인 저도 저에게 맞는 회사인지 역으로 면접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표님께 이사님 회사에 발송한 입사지원서와 이메일 내용을 읽으셨는지 그런데도 저를 채용할 의사가 있으신 건지 확답을 받고 2차 같은 1차 면접을 마쳤습니다.
입사 여부에 대한 답을 미루고 집으로 와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일단 속이 든든해야 내 일도 남의 일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밥을 다 안 먹었는데 조 대표님께 전화가 와서는 문자를 보냈는데 왜 답이 없냐는 거예요.
그래서 '아, 네 식사 중이라 못 봤습니다. 지금 보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문자에는 같이 일하자는 메시지가 와 있었고 출근을 하겠다고 답을 드렸습니다.
부장이라는 분이 성격이 괴팍하다곤 하지만 빨리 후임자 구하라고 아우성을 치셨다길래 이분은 퇴사를 꼭 하실 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인수인계 기간인 2~3일 정도만 만나면 된다는 생각에 가볍게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그날 저녁 조 대표님께 다시 전화가 왔는데요.
부장이랑 얘기를 했는데 사무실 정비가 안 돼 있어서 새로 온 사람에게 이런 누추한 자리에 모실 수 없으니 컴퓨터도 새로 사고 인터넷 연결도 해야 하니까 2주 뒤에 입사 하라는 통보였습니다.
2주 간의 급여는 지급할 테니 업무 프로그램을 익히거나 관련 공부를 하고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추가 채용이 아니라 전임자가 후임자로 바뀌는 건데 왜 컴퓨터와 인터넷 선이 필요한지 의아했지만 사정이 있나 보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대표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가 어떤 업무와 기능을 숙지했는지 문자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드디어 출근의 날이 되었는데요.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명 증상이 시작 되었습니다.
2주 동안 멀쩡했는데 갑자기 회사에 가기로 한 날 귓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아침 일찍 문 여는 병원을 찾아서 들렸다가 출근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귀에 이상은 없지만 스트레스로도 이명 증세를 느낄 수 있으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몸이 먼저 반응하는 동물적 느낌으로 회사에 가기가 싫어졌지만,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설마~설마~하면서 출근을 했습니다.
밝게 인사를 하고 말로만 듣던 그 괴팍한 부장님을 찾아봤는데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잘생겼다 못생겼다의 문제가 아니라 종이를 구겨놓은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서 지금까지 본 찡그림 중에 가장 구김살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표정을 얼마나 뒤틀리며 살았는지 화난 상태가 아닌데도 비뚤어져 있는 얼굴은 처음 이었습니다.
이분은 직급이 부장님이셨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한 달 전에 만났던 이 부장님과 성이 같았습니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이 부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이 부장님은 첫날부터 인수인계서를 내미셨는데요.
한 달 전에 인수인계를 못 받고 여기까지 흘러온 터라 여백이 대부분인 글자 몇 개가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부장님은 전에 만난 이 부장님과 동일하게 미혼에 취미도 애인도 없고 나이도 50살 언저리로 비슷했는데요.
다른 점은 이 회사의 조 대표님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보다도 어리겠다 싶었는데 진짜 어렸으니 부장님에게는 늦둥이 막냇동생 정도의 나이 차라 할 수 있었죠.
아무리 보스가 어려도 사장님인데 20대 초반의 신입 직원들 앞에서도 대표님을 비아냥거리며 깎아내리고 멀쩡한 사람을 헐뜯는 모습이 인성 따라 얼굴도 변하는구나 싶었습니다.
40대 후반이면 아무리 안 했어도 직장을 10년은 다녔을 텐데 무례를 넘어서서 무식하다는 표현도 아까울 정도로 상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대표님이 출근하시면서 근처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케이크를 사 오시든, 맛있는 음식으로 회식하든 대체 뭐가 불만인지 입이 너무 나와 있어서 오리인가? 사람인가? 구분이 안 되는 날이 대다수였습니다.
제가 입사하자마자 어떤 한식당에서 회식하게 되었는데요.
대표님께서 뜨거운 주전자를 잡다가 손을 데셨습니다.
식당 종업원분에게 얼음을 부탁했고 수건에 얼음을 싸서 대표님께 건넸는데요.
대표님께서 이런 배려도 아닌 배려를 받아 본 적이 처음이라면서 감탄하시는 겁니다.
제가 얼음을 만들어 가지고 온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 상황에서 부장님은 얼굴이 찌그러져서 대표님은 좋으시겠다면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모욕 주기 일쑤였습니다.
인수인계고 뭐고 부장이라는 분을 마주하기가 싫어서 빨리 퇴사하기만을 기다렸는데요.
후임자가 왔는데도 무슨 억하심정인지 두세 달 뒤에 퇴사하겠다는 겁니다.
사람 구하라고~ 구하라고~ 몇 번이나 닦달해서 제가 원하는 회사에 입사도 못 하고 구직자 돌려막기까지 당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러시는 건지 이분은 오리가 아니라 청개구리였습니다.
정식 출근한 지 일주일 동안은 인수인계 비슷한 것도 해주고 대표님 험담과 본인이 어떤 희생을 해왔는지, 이 회사가 얼마나 나쁜 회사인지 '넌 이제 고생길만 남았다~.' 말도 걸어주셨는데요.
다음 일주일이 되는 첫날부터는 제가 말을 걸면 본격적인 화를 내고 억지를 부리고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대놓고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대표님의 부름에 대표실로 들어갔는데요.
부장님이 퇴사일을 자꾸 미뤄서 명확한 날짜를 제시하며 확정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같은 날 점심시간 부장님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직원들에게 본인이 퇴사 후 연락처를 바꾸면 대표님이 자기 집에 찾아올 거라면서 퇴사하자마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버리겠다는 거였습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소중한 휴식시간에 마주하고 있으려니까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절로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 부장님은 본인이 원하는 퇴사일이 있었는지, 후임자인 제가 채용돼서 또는 너무 빨리 합격해서 어깃장을 담는 모습이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부장님의 뇌 구조에는 ‘조 대표는 나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대표님께서 갑자기 퇴사일 제시를 단호하게 하니까 상황의 급반전을 느끼고는 본인이 쫓겨나게 생겼다 뭐 이런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직원이 대표이사를 가스라이팅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취업이 아니라 창업해야 하나?’라는 리더의 꿈이 꿔지기도 했습니다.
자진 퇴사를 권고사직으로 만들어버리는 남다른 재주를 처음 봐서 평소에 써보기도 힘든 단어인 해괴망측하다는 말을 써보게 되네요.
그날 이후로 이 부장님은 본인이 앉았던 자리에 앉으라면서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셨는데요.
컴퓨터를 포맷 해놓아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존에 작성한 보고서 등을 달라고 하자 일주일 전만 해도 있다고 했던 파일들이 이제 또 없다는 겁니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세 살 먹은 유아들이 울면서 길에 누워있는 걸 보곤 하는데요.
3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모와의 기 싸움이 길에 눕는 것밖에 없어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잖아요?
우리가 그런 영유아들을 보면서 인품이 어쩌고 품위가 없다는 둥 그런 말을 안 하는 이유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라는 걸 알아서인 거죠.
그로부터 45년을 더 살아온 부장님은
도대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았길래 아직도 세상이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야비하고 저속한 행동을 하는 건지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어릴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아서 애정에 결핍이 생겼거나 성인이 된 이후로 책을 안 읽어서 자의식이 과잉된 거로 보입니다.
저는 원래 감정 기복이 없고 그냥 그런가보다 단순한 편이었는데 며칠도 안 돼서 이 회사에 다니기가 거북스럽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부장님은 근무 기간에 업무를 어떻게 한 건지 해놓은 일도 없었지만 그나마 해놨다는 일도 엉망이라 거래처에서는 계속 전화가 오는데 몇 달 동안 밤새워 수습한다고 해도 제 능력으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입사 첫 주부터 주말에 출근했습니다.
첫날 시작된 이명 증상은 더 심해졌고 자꾸만 예민해지는 모습을 제가 느끼면서 대표실 문을 두드렸는데요.
이 상황이 부장님의 자진 퇴사가 정말 맞는지 권고사직이라면 퇴사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은 또 그 큰 눈에 눈물이라도 글썽거릴 심산으로 아니라고 하셨지만, 이제는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겠는 이 트루먼 쇼 따위에 속았다가는 좋지도 않은 제 성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부장님의 연락처 변경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대표이사와 직원의 관계가 아니라 마치 치정 느낌이라 실례를 무릅쓰고 정말 사용자와 사용인의 관계가 맞는지 되물었는데요.
여쭤봤다가...
혼만 났습니다...(또르르)
이 와중에도 이 부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직원을 감싸시는 대표님의 태도에 정말 눈물겹게 진저리가 나서 문 앞에 이름표만 붙이고 독방을 차지한다고 리더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답 없는 회사에서 떠들어댄들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라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맘때쯤 9개월 동안 갈고 닦은 체력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다시 방전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부장님이 퇴사하든 말든 먼저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직서 제출 날 같은 달 퇴사 예정인 20대 신입 직원에게 퇴근 전에 말을 걸었는데요.
왜 퇴사하려는지 알았기 때문에 동종업계 직장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누구누구 씨 이렇게 이름을 부르면서 ‘이 업계에 좋은 선배도 많으니까 앞으로 좋은 선배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대신 사과 할게요’라고 얘기해주었는데 평소에는 불편한 점 없냐고 물어도 말이 없던 분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퇴근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전 달과 같은 2주를 근무하고 또다시 실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회사를 겪고 나서 멀쩡했던 몸 한 부분에서 한동안 정처 없이 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이명은 이명대로 피는 피 대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두 달 사이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상황에 놓인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에게 같은 일을 겪었다는 현실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오작동인가보다 싶었지만 연이어 두 번을 겪으니까 ‘왜 나에게 이런 선물이 왔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진짜 선물이라는 느낌보다 그런 식으로 억측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서 이건 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내가 이 상황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내가 50살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어야 할까?’ 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명의 부장님은 배우자와 자녀가 없어 시간 여유가 많았지만, 취미도 없고 애인도 없고 뭔가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면 돈을 써야 하니까 의지도 없고 노력은 더 싫어서 그냥 가방 메고 왔다~ 갔다~ 출근 도장만 찍으며 시간이 남아도는 삶을 살고 계셨는데요.
너무 많은 시간의 공허함을 직장에 대한 집착으로 채우려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왜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지고도 하고많은 회사를 두고 굳이 한 회사에 미련을 못 버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좋은 회사에 갈 기회의 문을 본인들이 열고도 말이죠.
내가 차린 회사가 아닌 이상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해고가 되는 거잖아요?
오십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아니고 100세 시대라는 말은 당면한 현실로 다가왔는데요.
점차 변화가 빠른 시대가 되면서 작은 거 뭐 하나라도 알고 있으면 조만간 큰 힘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90대 어르신이 수학능력시험을 통해 대학교에 진학하셨다는 취재 영상을 봤는데요.
이 인터뷰는 학력이나 학벌의 문제라기보다 무언가를 알고만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 또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그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산다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도 큰 벽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서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만큼 특정인에 대한 조소나 꾸지람보다 “내가 어떤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시는 현명한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로운 의사결정이 모여서 결국 그 합이 몸도 마음도 평안한 인생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퇴사나 입사 결혼이나 이혼처럼 인생의 변화가 있는 중대한 일들은 먼저 말로 내뱉기 전에 심사숙고하셔서 현명한 인생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야기는 아래의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사회적 인간 되기 [ 경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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